기사제목 명화산책 페드라 그리스신화의 계모와 양아들 치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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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산책 페드라 그리스신화의 계모와 양아들 치정 스토리

기사입력 2015.11.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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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산책 페드라 그리스신화의 계모와 양아들 치정 스토리


많은 비극은 아버지의 부재() 상황에서 비롯한다. 미국 감독 줄스 다신(Jules Dassin, 1911~2008)의 1962년 영화 [페드라(Phaedra)]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그리스의 선박왕 타노스(라프 밸론Raf Vallone 분)가 출장으로 집을 비운 사이, 아내 페드라(멜리나 메르쿠리 분)는 양아들 알렉시스(앤서니 퍼킨스 분)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금기를 넘어서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했다는 걸. 하지만 "장작에 불을 붙여달라"라는 페드라의 주문은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는 고백과도 같다. 양아들 알렉시스가 그 장작에 불을 붙이는 순간, 계모와 아들 사이의 금기도 깨진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 앞에서 이들은 말없이 손을 잡는다.
런던 국립극장에서 니콜라스 하이트너의 연출로 상연된 [페드르]. 페드르 역은 헬렌 미렌이 맡았다. 2009년

치정이 남긴 파장

이 영화의 빼어난 점은 계모와 아들이 잘못된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과정이 아니라, 그 이후에 등장 인물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 파장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현실과 정념() 사이의 간극을 견디지 못한 여인 페드라는 남편의 손길을 거부하고 알렉시스의 이름만 되뇌기에 이른다. 자신을 돌보는 유모 앞에서도 페드라는 자꾸 "몸이 아프다" "죽고 싶다"라고 고백한다. 치정()의 열병을 온몸으로 앓는 것이다. 영화는 이 여인을 도덕적으로 단죄하기보다는, 여성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편을 택한다.
[페드라]의 영화 포스터와 영화 속 한 장면
영화에서 오히려 현실적인 쪽은 양아들 알렉시스다. 그는 또래의 여자들을 만나며 금지된 사랑을 잊고자 애쓴다. 하지만 위선적인 화해보다는 정직한 파멸을 택하기로 한 페드라의 결심으로 인해 영화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바흐의 [ToccatasFugues)]를 흥얼거리며 그리스 에게 해의 절벽으로 추락하는 알렉시스의 스포츠카는 도덕적 인습과 금기를 뚫고 나간 자의 파멸을 상징한다.
1960년대 할리우드 자본이 투입된 영화로는 지나칠 만큼 파격적인 주제를 다뤘던 [페드라]는 사실상 그리스 신화의 현대적 변주였다. 선박왕 타노스는 신화 속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였고, 페드라는 이름 그대로 페드라였다. 절벽 아래로 추락한 아들 알렉시스는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페드라는 그리스 노래를 부르기 전에 "다른 그리스 노래들처럼 사랑과 죽음에 관한 것"이라고 암시한다. 타노스가 알렉시스에게 사준 스포츠카는 "지상에서 가장 빠른 관()"에 비유된다.

금기와 파국이 뒤엉킨 이 신화를 가장 먼저 문학의 소재로 삼았던 건,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Euripides)였다. 그는 자신의 희곡 『히폴리투스』에서 양아들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페드라가 거꾸로 히폴리투스가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목매달아 죽기까지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히폴리투스는 유모를 통해 페드라의 사랑을 전해듣지만 “테세우스가 출타 중이신 동안 나는 집을 떠나 있을 것이며 발설하지 않을 것이오”라며 구애를 거절한다. 하지만 히폴리투스의 다짐은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이 맹세 때문에 히폴리투스는 아버지 테세우스의 추궁에도 페드라가 자신에게 구애했다는 진실을 털어놓지 못한다. 결국 추방령을 받고 해안을 따라 전차를 몰고 가던 히폴리투스는 바다 괴물에 놀란 말들이 질주하는 바람에 전차에서 굴러떨어져 숨을 거둔다. 영화 [페드라]의 결말과 같다.
에우리피데스 초상 조각상, BC.330년,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폭군 네로의 스승으로 유명한 로마의 철학자이자 극작가 세네카(Seneca, 기원전 4~기원후 65)도 희곡 『페드라』를 남겼다. 이 작품에서 세네카는 에우리피데스 작품의 골격을 가져오면서도 여주인공의 성격은 한층 대담하게 설정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 페드라는 신들의 분노 때문에 그릇된 사랑에 빠지는 수동적 희생자에 가깝다. 반면 세네카의 희곡에서 페드라는 직접 흉계를 꾸미고 귀국한 테세우스 앞에서 양아들을 모함한다. 세네카의 작품에서 페드라는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저지르는 여인이다.
세네카가 남긴 희곡 아홉 편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은 등장 인물의 행동보다는 대사에 많은 비중을 싣고 있다. 이 때문에 무대 상연용보다는 식자층의 모임에서 낭송하기 위한 작품으로 추측된다. 특히 쾌락과 금욕을 주제로 한 등장 인물들의 대화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과 절제를 강조한 세네카의 스토아 철학을 희곡으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페드라의 유모: “신은 젊은이의 머리에 쾌락이라는 관을 씌우고, 늙은이의 머리에는 고행이라는 관을 씌운다. 왜 당신은 그것을 억제해서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려 드는가.”
히폴리투스: “덕 있는 자는 부에 대한 욕심도, 기약할 수 없는 명예욕도, 덕에 거스르는 속된 기질도, 해로움 많은 탐욕도, 야심에 가 득찬 공상도 모른다.”
세네카, 『페드라』
하지만 이 비극에는 한 가지 딜레마가 숨어 있었다. 페드라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양아들에게 사랑을 고백할 경우 근친상간이라는 주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는 비극적 숙명의 오이디푸스가 있지만, 오이디푸스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죄를 알지 못했다. 오이디푸스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지만, 페드라에게는 면죄부가 없다. 이 때문에 후대의 작가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페드라의 신화를 변주하기에 이른다.

이전에 상영된 페드라 영화를 동영상 코너에 게시하였다. 그리스신화의 현대적 연출을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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