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사탕수수밭에서 나온 150km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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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밭에서 나온 150km 투수

기사입력 2014.03.2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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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탕수수밭에서 나온 150km 투수


미국 아이오와주(州). 주인공 레이는 옥수수밭을 일구며 사는 평범한 농부다. 아내, 딸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의 귀에 ‘If you build it, He will come(네가 그걸 지으면 그가 올 것이다)’라는 환청이 들린다. 한 번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환청이 들리자 레이는 뭔가에 홀린 듯 자신의 옥수수밭을 갈아엎는다. 그리고 그곳에 야구장(그걸)을 짓는다. 가족과 지인들은 그의 엉뚱한 행동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꿈이 이뤄진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들었던 야구영웅들이 옥수수밭에서 나와 레이가 만든 구장으로 모여든 것이다.

자, 여기까지는 영화 <꿈의 구장>의 줄거리다. 영화나 되니까 ‘환청’이 극적 소재가 되고, 옥수수밭을 갈아엎어 야구장으로 만드는 게 용인된 것인지 모른다. 실제였다면 그는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거나 농지 불법 변경으로 관계기관 조사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특히나 1919년 월드시리즈 멤버들이 유령이 돼 옥수수밭을 헤집고 나와 야구장에 나타났다는 설정은 차라리 만화에 가깝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야구영웅들이 옥수수밭을 헤치고 나와 야구장까지 걸어 나왔다’는 대목은 반드시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 듯싶다. 비슷한 일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옥수수밭을 걸어 나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진 이는 바로 막시모 넬슨(32)이다.

사탕수수밭에서 튀어나온 강속구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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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이 헤치고 나왔던 사탕수수밭. 그에게 사탕수수밭은 오랜 가난과 고난을 상징한다.

2007년 오프 시즌.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의 모리시게 가즈 배터리 코치는 도미니카에 있었다. 그의 임무는 다음 해 팀에서 뛸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모리시게는 팀의 불펜포수이자 중남미 선수통역인 루이스 프랜시스의 소개로 한 도미니카 투수를 테스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약속시각이 넘도록 테스트를 받아야 할 투수가 보이지 않았다. 도미니카에서 10, 20분 지각은 일도 아니란 걸 익히 알고 있던 모리시게는 인내를 갖고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구장 옆의 사탕수수밭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리시게가 소리의 흐름에 따라 시선을 돌리자 사람 키보다 높은 사탕수수밭을 헤치며 한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모리시게가 깜짝 놀란 건 남자의 외모였다. 남자는 철사 덩어리가 제멋대로 엉킨 것 같은 정돈되지 않은 머리에 잔뜩 때가 묶은 반바지 차림이었다. 거기다 끈이 다 떨어져 가는 샌들을 질질 끌며 한쪽 손엔 지팡이, 다른 한 손엔 사탕수수를 쥔 채 모리시게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재미난 건 걸어오는 내내 사탕수수를 씹어 먹고 있던 것.

모리시게는 웬 농부가 구장으로 들어온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는 입단테스트를 받으려고 찾아온 선수였다. 모리시게는 통역인 루이스를 바라보며 “자네가 말한 시속 150km 강속구를 던진다는 투수가 저 녀석이야?”하고 물었다. 루이스는 고갤 끄덕이며 “저 친구가 오늘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온 넬슨”이라고 답했다.

모리시게는 속으로 ‘저것도 선수인가, 망했다’하며 혀를 찼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애써 찾아온 사람을 그냥 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모리시게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끔벅이는 넬슨에게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한번 던져봐” 하곤 하늘을 바라봤다. 훗날 모리시게는 “이전까지 눈부시게 하얗던 도미니카 하늘이 순간 카레 색깔처럼 노랗게 보였다”고 털어놨다.

모리시게를 더 절망으로 빠트린 건 넬슨의 태도였다. 넬슨은 가벼운 스트레칭은 고사하고, 캐치볼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마운드로 올랐다. 그런 넬슨을 보며 모리시게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스피드건에 찍힌 초구 구속을 보자마자 모리시게의 한숨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초구로 던진 속구가 시속 149km를 찍은 데 이어 2구도 시속 150km를 기록한 것이었다. 모리시게는 ‘스피드건이 고장 났나 싶어’ 스피드건을 좌우로 흔들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3구는 시속 152km가 나왔다. 모리시게는 제구는 형편없으나 엄청난 구위의 강속구를 던지는 넬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잘만 다듬으면 저비용·고효율의 외국인 투수로 키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테스트가 끝나자 모리시게는 넬슨에게 “일본에서 뛸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사실 뻔한 답이 돌아올 질문이었다. 가난한 넬슨이 일본행을 마다할 리 없었다. 그러나 넬슨은 “조건이 있다”며 결정을 유보했다. 모리시게는 ‘이 친구가 거액이라도 바라나’ 싶어 잠시 긴장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엉뚱하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것이었다. 넬슨은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며 “핫도그라도 좋으니 먹을 걸 사달라”고 졸랐다.

모리시게가 넬슨을 간이식당으로 데려가자 넬슨은 핫도그와 햄버거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어찌나 허겁지겁 먹었는지 넬슨의 이에 햄버거 포장지가 끼었을 정도였다. 식사가 끝나자 모리시게는 넬슨에게 연봉 500만 엔(약 5천200만 원)을 제시했다. 대개의 일본 구단이 외국인 육성선수에게 지급하는 일반적인 연봉이었다. 물론 무일푼의 넬슨에겐 큰돈이었다. 넬슨은 “하루라도 빨리 일본에 가고 싶다”고 기뻐하면서도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데 비행기 티켓을 살 돈이 없다”고 고백했다.

‘주니치 외국인 육성 선수’ 넬슨은 모리시게가 건네준 ‘가불’ 100만 엔(약 1천50만 원)을 받고서야 겨우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두 번의 실수로 야구인생이 벼랑까지 몰렸던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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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처럼 야구선수가 되는 게 도미니카 소년들의 꿈이다.

주니치에 입단하기 전까지 넬슨은 고향 도미니카에서 그야말로 처참한 생활을 했다. 무직에 무일푼으로 변변한 방 한 칸도 구하지 못해 처가에 얹혀살았다. 바다에서 낚은 생선이나 텃밭에서 일군 채소를 파는 게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그렇다고 넬슨의 인생이 처음부터 ‘막장’이었던 건 아니었다. 반대였다.

그는 2000년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은 유망주 투수였다. 십대 시절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던 그에게 양키스 스카우트는 “앞으로 네 인생은 뉴욕에서 꽃필 것”이라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가난한 야구소년 넬슨은 이미 성공을 손에 쥔 것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이를 3살(넬슨 본인은 ‘2살’이라 주장) 속이고, 본명 대신 ‘윌리 피에’란 가명을 쓴 게 들통 나 그만 미국 비자를 받는 데 실패한다.

2003년까지 도미니카에 머물던 그는 2004년 비로소 미국땅을 밟는데 성공한다. 루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2005년 유망주 대열에 합류한 넬슨은 다시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이때도 운명은 넬슨의 편이 아니었다.

그해 넬슨은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며 눈앞까지 찾아왔던 ‘성공’을 거머쥐지 못한다. 여기서 엄청난 사건은 위장결혼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이민국은 불법 이민자를 막고자 도미니카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매우 엄격하게 심사했다. 당연히 비자 발급보단 거절이 많았고, 미국에 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도미니카인들이 넘쳐났다. 이때 도미니카 브로커들이 고안한 방법이 위장결혼이었다.

미국 체류 자격을 가진 미국 내 도미니카인과 위장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미국 비자가 나오기에 도미니카 브로커들은 도미니칸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위장결혼 파트너로 적극 활용했다.

위장 결혼의 대가는 3천 달러에 불과했다. 미래를 내다봤다면 당연히 거절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넬슨은 위장결혼에 응하며 3천 달러를 수수했다. 어리석음의 대가는 3천 달러 이상이었다. 위장결혼 사실이 탄로 나고서 넬슨은 도미니카로 쫓겨났고, 5년간 미국 입국이 불허된다.

넬슨은 2006년부터 도미니카리그에서 뛰며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그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메이저리그팀은 나오지 않았다. 설령 관심이 있어도 5년간 미국 비자 발급이 불허된 그는 2011년까지 미국땅을 밟을 수 없었다. 넬슨은 2007년 무대를 옮겨 이스라엘 야구리그에서 뛰며 다시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미국이나 중남미도 아니고, 이스라엘에서 뛰는 그를 누구도 주목할 리 없었다.

결국 넬슨은 그해 시즌이 끝나고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처가에 얹혀살며 하루하루를 절망감에 취해 지냈다. 만약 2008년 사탕수수밭을 갈아엎고 만든 야구장에서 모리시게가 ‘외국인 육성 선수 입단 테스트’를 하지 않았다면 넬슨은 영원히 사탕수수밭을 벗어나지 못했을 일이었다.

무일푼이었던 넬슨, 10억 원의 사나이가 되다.

넬슨의 주니치 시절 투구 영상

2008년 넬슨은 일본땅을 밟는다. 도미니카에서 미국을 경유해 일본에 도착했으면 14시간 정도가 걸릴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 입국이 금지된 넬슨은 도미니카에서 유럽을 거쳐 일본으로 오는 ‘머나먼 여행’을 선택해야만 했다.

일본에 도착하고서도 그의 머나먼 여행은 계속됐다. ‘당장 1군에서 활용하기엔 제구가 나쁘고, 슬라이드 스탭이 느리다’는 지적이 연달아 나왔다. 특히나 유년 시절부터 투수로 뛰고, 마이너리그까지 경험한 투수임에도 기본적인 수비법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펑고를 받을 때도 마치 바구니로 새를 덮치듯이 글러브로 공을 덮어 잡는 통에 주니치 코치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2008년을 2군에서 보낸 넬슨은 드디어 2009년 1군 무대를 밟는다. 결과는 예상외로 좋았다. 26경기에 등판해 1승 3패 평균자책 3.58을 기록했다. ‘육성형 외국인 선수’라는 평가답게 넬슨은 주니치 2군에서 투구의 모든 것을 새로 배운 터였다. 일본 야구계는 강력한 포심패스트볼과 투심패스트볼 그리고 체인지업, 커브에 능한 넬슨이 2010시즌엔 뭔가 큰일을 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넬슨의 오랜 친구인 ‘불행’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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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탄 사건'이 터진 뒤 팬들에게 사죄하는 넬슨

2010년 2월. 주니치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려고 오키나와를 찾은 넬슨은 나하공항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공항 검색대에서 가방에 넣어둔 실탄이 발견된 것이다. 넬슨은 “도미니카에서 신변보호를 위해 총을 들고 다녔는데, 실탄이 가방 속에 들어있다는 걸 깜빡하고 비행기를 탔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오키나와 경찰도 넬슨의 진술을 받아들여 ‘총기가 없고, 고의로 실탄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다음날 석방한다. 그러나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주니치는 넬슨에게 ‘3개월 출전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린다.

어쩌면 3개월간의 출전 정지 처분이 넬슨에겐 약이 됐는지 몰랐다. 넬슨은 스프링캠프에서 차근차근 몸을 만들고서, 다시 한 번 투구의 기본을 익혔다. 효과는 좋았다. 그해 6월 1군 무대로 돌아온 넬슨은 생애 첫 완봉승을 따내는 등 4승 3패 평균자책 3.16으로 ‘육성형 외국인 투수’의 진가를 보여줬다.

2011년은 최고 전성기였다. 넬슨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개막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한다. 1986년 가쿠 겐지에 이어 25년 만에 외국인 투수가 개막전 주니치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순간이었다. ‘아시아 야구를 배워야겠다’는 넬슨의 노력과 넬슨의 가능성에 주목해 3년 동안 공을 들인 주니치의 수고가 빛을 내는 장면이기도 했다.

넬슨은 그해 31경기에 선발 등판해 10승 14패 평균자책 2.54를 기록했다. 넬슨의 역투에 힘입어 이해 주니치도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원체 빠른 공을 던지는데다 갈수록 제구까지 좋아지며 넬슨은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는 투수’로 꼽힌다. 연봉도 대폭 올라 넬슨은 주니치와 8천만 엔에 1년 재계약을 맺는다. 8천만 엔이면 도미니카에 근사한 집 몇 채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하지만, 그의 품에 안길 것 같은 성공은 이번에도 코앞에서 사라진다. 물론 이때의 좌절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했다. 어깨 부상이 원인이었다.

2012년 넬슨은 갑작스러운 어깨 부상에 시달리며 1군 무대에 6번밖에 서지 못한다. 주니치는 넬슨의 재활을 후원하려 했으나, 부상 정도가 심하다는 의사 진단이 나오자 그해 10월 그를 자유계약선수로 푼다.

고난과 좌절의 ‘사탕수수밭’을 빠져나와 성공과 환희의 ‘마운드’에 올랐던 넬슨은 다시 사탕수수밭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누가 사탕수수밭을 헤치고 나온 넬슨처럼 ‘깜짝 외국인 스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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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입단 테스트에서 불펜투구하는 넬슨

주니치에서 퇴단한 넬슨은 도미니카로 가는 대신 베네수엘라로 향한다. 그곳 리그에서 ‘콜’이 온 까닭이었다. 그러던 중 2013년 2월 한국 프로야구 두산의 부름을 받고 입단 테스트에 응한다. 당시 두산은 부상으로 입단이 좌절된 캘빈 히메네스의 대타를 찾는 중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5년간 활약하고, 누구보다 아시아야구에 정통한 넬슨은 적절한 대타처럼 보였다. 하지만, 넬슨의 구위는 예전 같지 않았다. 어깨 부상의 염려도 그대로였다. 결국 두산은 넬슨과의 계약을 단념했고, 넬슨은 별 소득 없이 베네수엘라리그로 돌아간다.

넬슨은 지난해 베네수엘라리그에서 뛰고서 올 시즌에도 같은 리그에서 뛸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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