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교회와 협동조합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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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협동조합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사입력 2013.03.1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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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협동조합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몬드라곤(Mondragon)은 총자산 약 54조 원, 260개 회사, 직원 8만 4천 명 규모의 스페인의 대기업이다. 수년간 지속된 유럽의 경제 위기에도 적자가 나지 않을 만큼 견실한 이 기업은 출자금을 낸 조합원이 3만 5천여 명인 대표적인 협동조합이다. 돈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티 신부가 자신의 교구인 바스크 지역에서 일으킨 주민운동에서 태동해 1956년 5명으로 시작한 몬드라곤의 기업 목표는, 이윤 극대화나 기업 가치의 극대화가 아닌 ‘고용의 확대’다.

기업이 구체적인 이유도 알리지 않고 노동자 5000명 중 2600명을 해고했다는 이야기(쌍용자동차)를 몬드라곤 조합원들이 듣는다면,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들 하지 않을까. 몬드라곤은 경기 침체로 회사가 힘들어져도 조합원들을 쉽사리 해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급여의 80%를 지급하는 휴직 제도를 활용하거나, 실직을 하더라도 2년간 급여의 80%와 실업 수당을 나누어 지급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물색하도록 하고, 신규 인력 수요가 발생하면 실직자를 0순위로 배치한다.1) 이런 구조적 뒷받침과 노력을 바탕으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도 해고 없이 극복했다.

‘이윤의 극대화’라는 자본주의 논리보다 상생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협동조합들은 세계 곳곳에 있다. 미국의 선키스트, AP통신 및 오션스프레이(음료 회사), 뉴질랜드의 제스프리(키위 회사), 네덜란드의 라보뱅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 기업들은 우리나라에서 (2011년 12월 버반 통과 1년만인) 지난 12월 협동조압기본법이 발효된 소식과, 국제연합이 지정한 2012년 세계 협동조합의 해와 맞물려 곳곳에서 대안 경제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 통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5인의 발기인만 있으면 협동조합을 만들어 금융과 보험을 제외한 어떤 사업도 할 수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은 한국교회 안에도 고조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해 11월 23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사장 홍정길, 이하 기윤실)이 연 ‘2012 교회의 사회적 책임 심포지엄’에는 150여 명이 참석해 기독교회관 조에홀을 가득 메웠다.

한국교회의 역사와 협동조합

역사적으로 한국교회는 협동조합과 무관하지 않다. 아니, 초기 한국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협동조합과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교회와 협동조합의 만남’이란 주제로 한국교회 역사 속 협동조합운동을 정리해 주었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각종 사회단체와 지식인들은 농촌사회와 농민들의 재건과 구제를 주장했다. 당시 종교 세력으로 민족주의 진영의 한 축을 담당했던 기독교계 역시 농촌 진흥과 농민 자립을 위한 농촌 운동을 펼쳐 나갔다. (중략) 당시의 기독교는 농촌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개인의 게으름이나 생활력 부족으로만 보지 않고 식민 지배가 낳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였으며, 이에 대한 타개책을 모색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대안으로 협동조합운동을 제시하였다.”

1928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국제선교대회에(IMC)에 참석한 한국 대표 김활란, 양주삼 등이 덴마크를 돌아보고 귀국한 뒤, 협동조합운동 정보를 퍼트렸고, <동아일보> 등이 협동조합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다.2) 당시 기독교 협동조합운동을 주도한 그룹은 YMCA와 대한예수교장로회 농촌부다. 특히 장로회 총회는 1929년 공동구매와 공동판매까지 진행하는 중앙신용조합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 이후 기독교 협동조합운동은 내부 반발과 일제의 탄압으로 더 발전하지 못했다.

비록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만큼 한국 사회의 협동조합운동을 주도하지는 못했으나, 협동조합의 정신과 지역사회 선교를 접목한 곳들이 있다. 성남에서 이해학 목사가 도시 빈민들과 함께 세운 주민교회는 1979년 12월 시작한 주민교회신용협동조합을 꾸준히 성장시켰고, 1989년에는 주민소비자생활협동조합까지 만들어 지역사회의 협동조합운동을 이끌고 있다. 강원도 원주에서도 호저교회 교인들과 한경호 목사(현 횡성영락교회)가 1989년 시작한 호저소비자협동조합이 원주생활협동조합으로 성장해 지역의 상징적인 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했다. 예장 통합은 1994년에 예장생활협동조합을, 기독교대한감리회는 1999년에 농도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해 이어오고 있다. 2005년부터 공동육아 협동조합인 궁더쿵어린이집에 참여하며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서울 구로구의 평화의교회(박경양 목사) 사례도 흥미롭다. 몇 안 되는 사례이지만 협동조합이 법의 지원을 받지 못하던 시절에 한국교회 안에 뜻 있는 이들이 어렵게 일구어 낸 자산들이다.

협동조합기본법, 교회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사실 우리나라에는 이미 협동조합과 협동조합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 8개의 협동조합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서 육성한 곳들이고, 법도 이들에게만 국한되는 일종의 특별법이었다.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의 정신이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구성원의 동등한 출자나, 균등한 분배, 구성원 1인 1표에 의한 사업 운영 등 협동조합의 정신을 지향하며 단체를 운영하고 싶어도 법의 인정을 받지 못해 애로를 겪는 곳들이 많이 생겨났다.3)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었다는 것은 그런 단체들에게 숨통을 틔워 주고 국민 누구에게나 협동조합을 시도해 볼 기회를 준 것이다. 즉 마음 맞는 5명만 뭉치면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다음은 원주생협을 일으킨 한경호 목사가 협동조합 결성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협동조합을 결성하려면 먼저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발기인회를 구성하여야 한다. 설립 동의서의 작성과 취합, 설립 신고 방법, 설립에 필요한 서류 준비 등의 작업을 하고 발기인총회를 연다. 발기인 총회를 통하여 그 동안의 준비 사항을 보고하고 창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 창립준비위원회는 정관의 작성, 사업 계획(안)의 작성, 사무소 소재지 결정, 창립총회 일시 및 장소 섭외 등 창립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한다. 준비가 다 되면 창립총회를 열어 임원을 선출하고 조직을 정비한다. 임원은 이사장 1인을 포함한 3인 이상의 이사와 1인 이상의 감사를 둔다. 임원의 임기는 4년의 범위에서 정관으로 정하면 된다. 창립 이후에는 소재지 관할 시, 도지사에게 설립 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 이후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법인으로 인가를 받게 되고 법의 보호 하에 활동할 수 있다. 법인 인가를 취득하면 사업에 착수할 수 있다.”4)

기윤실의 ‘협동조합과 교회’ 심포지움에 토론자로 나온 부천 새롬교회 이원돈 목사는 인문학 카페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진행하고 있는 ‘약대동 체험 마을’이라는 협동조합식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같은 지역의 서로사랑교회 최재선 목사도 ‘아하, 체험마을’이란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됨에 따라 이들과 같이 지역 사회와 연계한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모양의 협동조합 사업이 한국교회 안에서 의욕적으로 시도될 것이다. <한겨레신문> 김현대 선임기자는 협동조합의 성공 조건으로 공동체성과 신뢰를 강조하면서 “교회는 이 두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협동조합과 잘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 23일 기윤실이 '협동조합과 교회'라는 심포지움을 열었다.

그러나 아이쿱생협의 신성식 대표는 “현실에서 살아남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경고한다. 자기가 목격한 바로는 그동안 협동조합을 해서 성공한 교회가 적다는 것이다. 그는 “나눔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교회와 협동조합은 맞지만, 교회가 협동조합 설립 전면에 나서거나 목회자가 경영 책임을 맡는 것보다 뒤에서 지원하는 형식이 더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정재영 교수는 “협동조합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 문제와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대안 경제운동”이라며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야흐로 한국교회가 협동조합과 다시 만나야 할 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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