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필리핀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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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

기사입력 2011.08.30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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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 가슴을 가진 사회인이 되고 싶어요”


[하초희 세계재난구호회(WDRO) 단원(강원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
대학생들에게 봉사활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학생들의 봉사활동은 ‘이 치열한 취업난 속에서도 난 이러한 바른 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증명해 줄 일종의 자격증 취급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진심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대학생들의 봉사활동의 의미를 이 정도로 퇴색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 있는 나 또한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 하루하루를 자기발전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 느낀 것이 가슴의 퍽퍽함이었다. 나를 위한 생각, 나를 위한 행동, 나 자신만을 위한 일상이 가슴에 갈증을 느끼게 했다.

 

4학년으로 들어서는 겨울방학. 마른 가슴을 안고 필리핀으로 사랑의 집짓기 해외 봉사활동을 떠나게 되었다.

 

“국내에도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굳이 해외 나가서 봉사활동을 하느냐”는 주위의 물음에 하나하나 답할 수 없었다. 나에겐 새로운 환경이 그리고 더 자극적인 충전이 필요했다.

 

필리핀에 입국한 다음날부터 우리의 봉사활동은 시작되었다. 안티폴로시 그 곳에서도 나자랜 마을에 도착했다. 한국의 시골마을과 같은 풍경이었다.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이 성장하기 이전 1960년대와 비슷한 모습이라고 했다.

 

필리핀이라면 우리나라가 한창 어려울 때 원조해주던 나라였다는데 이렇게 서로 입장이 변해버렸다는 것이 기분을 묘하게 했고, 도움을 받은 나라의 국민인 만큼 더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열의를 다졌다.

 

난생 처음 만져보는 삽과 페인트, 시멘트, 미장도구들. 집짓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내가아닌 우리를 느꼈다. 필리핀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함께 벽돌을 옮기고 시멘트를 비비면서 땀을 흘리는 봉사단원들. 그리고 계속 고맙다(SALAMAT PO:따갈로그어로 고맙다는 말)고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시는 집주인 마리아 아주머니.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감정이 교류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한창 땀을 흘리고 있을 무렵에 마리아 아주머니께서 간식을 만들어 주셨다. 사전교육 당시 현지 음식을 함부로 먹었다가는 탈이 날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걱정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한 육체노동에 허기졌던 우리는 간식을 맛있게 싹쓸이해 버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본부장님으로부터 가슴 찡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가 담당한 집의 가족은 어려운 형편에 8명의 식구가 살면서 일주일에 쌀 0.5Kg정도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고 작업 중 제공된 간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흔한 가벼운 간식정도가 아닌 집에는 부담이 될 고마움의 엄청난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죄송한 마음에 이후부터는 간식을 주시면 우리는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사양했지만 마리아 아주머니의 간식은 우리의 봉사가 끝날 때까지 매일 제공되었다. 그들의 생활은 빈곤할지 몰라도 마음은 우리보다 부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에서 나의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었던 또 하나의 단비는 현지 아이들이였다. 한국과 달리 필리핀에는 꼬마 아이들이 매우 많았다. 초반에는 숨어서 봉사단원들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시간이 차츰 지날수록 우리의 인사를 받아주더니 먼저 인사를 건내기도 하고 이름을 외워서는 옆에 딱 달라붙어 마치 친동생처럼 살갑게 다가왔다.

 

점심시간이나 작업 중 휴식시간에 아이들과 놀아주다보면 안아주거나 업어주는 경우가 생기는데 현지아이들의 나이보다 작은 체구와 가벼운 몸무게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대부분 아이들의 부모는 일자리를 찾아 외국에 있어서 건강관리는 무리인 듯 보였다.

 

놀다가 생긴 상처인지 다친 아이들도 보였고 거의 모든 아이들이 잘 씻지 못하는지 흙먼지를 한 겹씩 입고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은 열악했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눈은 그 열악한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듯 밝고 예뻐서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나고 나를 미소짓게 한다.

 

나는 필리핀에 사랑의 집을 지어주러 갔지만 내가 쌓아올린 집은 마음의 기둥이였다. 위태롭게 느껴졌던 개인이 아닌 우리를 느끼게 되었고 베풂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베풀수록 차오르는 따뜻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느꼈다. 도움을 주러 간 낯선 그곳에서도 나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고 그 힘으로 더 큰 사랑을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일상에 복귀하겠지만 이전의 메마른 대학생이 아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 홀로 경쟁적으로 달리기보다는 함께 나아가고, 잘난 사람이기보다는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촉촉한 가슴을 가진 사회인이 되기 위해 살아가려한다.


하초희 세계재난구호회(WDRO) 단원(강원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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