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갓 태어나서 누는 암녹색의 배내똥은 냄새가 없다. 똥이나 방귀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장내 세균이 음식을 소화한 뒤 내놓는 분비물 탓인데 태아의 장은 무균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도 아기 똥에 냄새가 난다. 음식을 먹으면서 대장균과 유산균 등 수많은 세균이 아기의 장에 들어간다는 증거다.
보통 인간의 장 속엔 약 500종에 달하는 세균이 약 100조 마리나 서식한다. 모두 합치면 그 무게가 약 1㎏이나 된다. 우리 몸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병원균의 과도한 증식을 억제하면서 소화를 돕기도 하는 이 장내 세균이 요즘엔 미래 의학의 가장 흥미롭고 유망한 분야로 주목 받고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몸에 이로운 장내 세균 군집이 붕괴하고 해로운 장내 세균이 득세하면 암이나 당뇨, 비만이 발생한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특정 종류의 장내 세균 비율이 낮을 경우 자폐증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낸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또 장내 세균이 식품 알레르기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장내 세균은 영아기 때 항생제를 사용할 경우 감소하는 세균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근래 들어 식품 알레르기 환자가 급증하는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비록 실험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들이지만, 장내 세균이 우리에게 질병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획기적 치료법을 제시해 줄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최근 미국 연구진은 장내 세균이 인간의 식습관 및 음식 선택에 영향을 줘 자신들의 성장에 좋은 특정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조종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인간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내장은 신경계 등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연구진은 장내 세균이 특정 신호전달물질을 분비해 인간의 신경신호를 바꾸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장내 세균이 사람의 기분을 조종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연구진이 실험쥐를 대상으로 특정 박테리아를 주입한 결과 평상시와는 달리 불안한 행동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연구결과대로라면 장내 세균을 이용해 간단하게 개인의 식습관 및 체질을 개선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해조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해조류로부터 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장내 세균을 이식시킬 경우 자연스레 해조류를 찾게끔 식습관을 바꿀 수 있는 것. 이렇게 되면 언젠가는 아이들의 편식을 고쳐주는 ‘장내 세균 특효약’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