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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충 이야기
‘간난편충cysticercus’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성체 편충이 되기 이전의 낭충 상태를 말한다. 간난편충은 일종의 통통한 핑크색 애벌레 상태다. 성체가 되려면 갈 길이 멀지만 간난편충에 이르기까지만 해도 오디세우스의 여정에 비할 만큼의 역경이라 할 수 있다. 이 여정은 미끈미끈한 자웅동체 편충들이 서로 뒤엉켜 성교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괴한 사랑 행위가 끝나면 간난편충이 잉태된다. 간난편충들과 수없이 많은 알들이 함께 배출되고, 진흙과 분뇨 속에서 성장된다. 배출된 간난편충 중 대다수가 곧 사망하지만, 먼지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배고픈 딱정벌레의 입을 통해 통째로 삼켜진 일부 운 좋은 아이들은 살아남는다.
간난편충은 딱정벌레 숙주의 내장 속에서 성숙한 후 내장을 뚫고 밖으로 나온다. 딱정벌레 체내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간난편충은 점차 변태하여 최고 성장 단계인 3단계 애벌레 상태에 이른다. 이 여정은 또 한 번의 우연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나 쥐가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그 딱정벌레를 섭취해서 편충을 통째로 삼켜야 한다. 이 두 가지 종류의 포유류는 적절한 밀도의 내장을 지녔으며 풍부한 음식을 공급해줄 수 있다. 편충의 일생이 이렇게 격변을 겪듯이 편충 전체의 역사 또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1세기 정도 전 수세식 화장실의 개발이 그러했고, 후기 산업사회 도래로 인한 인간 삶 전체적 변화 또한 그러했다.
현재 전 세계 기생충학자들과 보건의사들은 “기생충 퇴출이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과학자들은 회충, 갈고리충, 편충 등 지구촌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을 감염시킨 기생충 박멸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인체 내에는 최소 340가지 종류의 기생충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중 대다수가 내장 내에 거주한다. 내장에 일단 안전하게 자리를 잡으면 기생충 중 일부는 음식을 훔쳐 먹고 일부는 내장에서 피를 빤다. 특히 영양실조 상태의 어린이의 경우 기생충 감염 정도가 심하면 성장 저해, 빈혈, 기능 장애가 발생하고 종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한 예로 갈고리 편충은 1900년대까지 미국 남부에서 ‘아메리칸 킬러(Necator americanus)’라는 악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기생충이 인도 및 아프리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알레르기 치료에 기생충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뉴욕 대학교 란곤 메디컬 센터의 기생충학 부교수인 핑 로크P’ng Loke 박사의 말이다. 물론 로크 박사를 포함한 여러 연구가들이 시도하고 있는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이들의 기생충 육성은 장내에서 통제된 조건 아래 일정하게 기생충 객체를 증가시키고 있다. 이 연구자들은 인간 소화기관 내 기생충이 거의 전멸한 것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몸이 신종 전염병에 취약해진 것이라고 믿는다. 과거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사실이며 현재로서도 개발이 뒤처진 국가들에서는 아주 낯선 개념이다. 연구가들은 청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과도한 노력 때문에 간난편충들이 수세식 화장실 물에 씻겨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흔하지 않은 실험
10년 전 아이오와 대학교 위장병학자들은 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는 이후 기생충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은 ‘궤양성 대장염’을 앓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 궤양성 대장염은 설사, 하혈, 고통을 초래하는 ‘염증성 장질환(IBD)’의 심각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조사 대상자들은 평균 9년간 해당 질병을 앓았다. 당시 연구팀의 리더였으며, 현재 터프츠 메디컬 센터Tufts Medical Center에서 위장병학 부서장인 조엘 웨인스톡Joel Weinstock 박사는 대장염이 일상적인 질병이 된 원인이 갑작스런 유전자적 변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크론씨병이나 궤양성 대장염 등의 질병은 20세기가 되어서야 유행한 질병입니다. 이는 분명 유전자적인 변화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 20세기와 21세기 사이 이 질병들이 널리 확산될 수 있었던 중요한 환경적 요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도 연구자들은 염증성 장질환의 그 어떤 요인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웨인스톡 박사는 만약 이 질병들이 어떠한 추가적 요인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과거에는 인간이 염증성 장질환을 앓지 않도록 보호해주던 보호 인자가 손실되어 초래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바로 기생충이 그 보호 인자가 아닌가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20년 넘는 시간 동안 연구실에서 내장 기생충을 연구해왔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기생충은 숙주의 면역 반응을 크게 약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궤양성 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장 내 기생충 객체수를 높인다면 과도한 면역 반응으로 인한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웨인스톡 박사는 그의 가설이 매우 급진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역겹다는 이유만으로 이 가설을 거부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연구 진행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그와 그의 동료들은 본인들이 생각할 수 있던 중 가장 안전한 기생충인 ‘돼지 편충pig whipworm’을 선택했다. 돼지 편충은 인간 편충과 유전학상 가까운 관계였으나 인간 내장 내에서 몇 주밖에 살아남지 못했고 번식도 하지 못했다. 환자를 감염시킬 때에도 거부감을 덜기 위해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작은 편충알을 삼키도록 했다. 파일럿 연구 진행을 인가 받은 후 아이오와 연구가들은 미국농무부(USDA)로부터 편충알을 제공받았다. 이 파일럿 연구는 지원자들에게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기생충인 ‘TSO(Trichuris Suis Ova, 돼지편충알)’를 이용했다. 연구가들은 TSO의 알이 궤양성 대장염 치료에 미치는 효과를 보다 대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가를 얻었다. 이들은 실험 설계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플라시보 효과’, ‘무작위성’, ‘이중 실험’의 세 가지 임상실험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짜약을 투여 받은 환자들 중 17%는 상당한 호전을 보였다.
치료에는 믿음만한 약이 없는 법이다.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니다. 감염된 이들 중 43%, 즉 TSO를 투여 한 환자 수가 위약을 투여한 환자 수보다 2배 이상의 호전을 보았다. 이와 같은 성과를 고려한다면 아이오와 연구가들의 실험 이후 다른 임상실험들도 소개되었어야 맞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이후 연구에서는 GMP, 즉 의약품의 안정성과 유효성 기준을 충족하는 기생충만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후속 연구로 이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GMP란 제조 품질 관리 기준입니다.
관리 기준은 결국 연속성이 핵심입니다. 즉 FDA가 모든 기생충 실험군이 동일한 퀄리티와 양을 지녔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매번 기생충의 퀄리티와 양을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TSO는 합성할 수 있는 화학물질도 아니고 세포에서 생성되는 여느 단백질과는 다릅니다. TSO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배양 과정이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웨인스톡 박사의 연구 그룹이 TSO 배양에서 성공을 이루게 된 것은 독일 제약회사인 ‘오바메드Ovamed GmbH’라는 한 독일 회사의 지원 덕택이었다. 오바메드는 이 실험 이전에도이미 여러 차례 생화학적 치료 관련 실험에서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이 회사 창립주들 역시 상처 치료에 의학적 목적으로 이용 가능한 구더기들을 실험했던 것이다.
이 회사가 TSO 배양 프로세스를 특허낸 직후 미국 내 환자들은 바로 의사 처방전만 있으면 TSO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TSO를 독일에서 수입해 썼다. 하지만 2006년 FDA는 다시금 TSO를 비허가 약물로 분류하여 소규모 의학적 연구 목적으로서의 사용을 제외하고는 수입 자체를 금지했다. 이 조치는 여전히 환자들과 대규모 조사를 원하는 연구자들에게 불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아르헨티나 과학자들은 약 5년간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추적한 후 보고서를 발표했다. 자가면역 장애의 일종인 다발성 경화증은 뇌와 척수 내 신경을 덮고 있는 보호막을 공격하여 신체 일부를 불구로 만들며,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초기에 연구 대상 환자들은 기생충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 일부 환자들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 기생충에 감염되었다. 공교롭게 이들은 다발성 경화증 재발이 훨씬 적었을 뿐만 아니라 신경 손상도 적었다. 2011년 <신경면역학 저널Journal of Neuroimmunology>에 실린 한 사설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마치 내장에 기생하는 기생충 감염으로 인해 면역학적 ‘등불’이 켜진 것만 같았다. 기생충 감염은 다발성 경화증 활동을 크게 약화시켰다.”
감염의 효과
모든 염증성 장질환은 괴롭다. 그중에서도 크론씨 병은 최악이다. 이 병은 내장뿐만 아니라 입에서 항문까지 모든 소화기관을 공격할 수 있다. 내장 벽에 염증성 궤양이 형성되면 복통, 설사, 발열, 식욕 감퇴가 진행되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33세의 미국인, 스미스는 크론씨병으로 온갖 고생을 다 했다. 크론씨병 발병으로 장벽에 염증성 궤양이 형성되었고, 그로 인해 박테리아로 가득한 물질들이 그의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의사는 수술로 그의 몸 안에서 내장 6인치를 제거했고 손상이 안된 나머지 내장 끄트머리들을 연결했다. 수술 직후 약 1년 동안은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병이 재발했다. 결국 두 번째 수술로 내장의 15cm 정도를 떼어냈다. 인간 내장 길이는 약 900cm다. 이제 그의 장 길이는 885cm로 짧아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고 한다. “계속 잘라내다가 3분의 1 길이만큼 덜어내게 되면 영양분을 흡수할 수가 없어 죽게 된다더군요.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수술에서 회복한 후 스미스는 웨인스톡 박사 논문을 우연히 읽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박사는 S씨에게 오바메드 사가 품질 관리 기준에 부합하는 돼지편충알, 즉 TSO의 배양 프로세스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스미스에게 좋은 소식은 주치의를 설득하여 처방전을 받아낼 수 있다면 합법적으로 TSO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쁜 소식은 3달치 TSO 처방에 5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데,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닐 뿐더러 보험회사에서 실험적 치료 목적의 의료비 지출은 보상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는 사실이다. 이후 1년 동안 스미스는 가까스로 돈을 모아서 주치의에게 TSO 실험을 진행하도록 설득했다. TSO는 작은 튜브 내 전해질 용액 안에 담긴 상태로 수입되었고, 이후 매 2주마다 전해질액을 삼켜야 했다. 최초 실험체가 그의 체내 안에 안착될 때까지 일정 기간 시간이 흐르자, 다발성 경화증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경화증 증상이 완전히 호전되었으며, 3달 후 TSO가 모두 소진되어 더 이상 투여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TSO 공급이 중단되자 경화증 증상은 재빠르게 재발했다. 하지만 재정적인 여력이 부족하여 재주문을 할 수 없었고 다발성 경화증으로 인한 고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병은 ‘협착증’, 즉 내장 기관 통로가 심각하게 좁아지는 증상으로 발전했다. 소화기가 직경 1mm도 안될 정도로 수축되어 음식물도 통과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앰뷸런스에 실려서 응급실로 운반되었습니다. 모르핀을 놓아달라는 소리만 질러댔습니다.” 2009년 세 번째 수술을 받은 스미스의 내장은 868cm로 줄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영국인 재스퍼 로런스라는 사람이 심각한 알레르기와 천식 치료를 위해 스스로 십이지장충에 감염되었는데 효과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미스는 로런스를 찾아내었고, 캘리포니아에서 로런스가 운영하던 소규모 벤처 회사에서 십이지장충 알을 구입했다.
기생충들은 서로 다른 일생 주기를 갖는다. 직접 마실 수 있는 편충과 달리 구충 애벌레들은 피부를 통해 몸 안으로 투입된다. 로런스의 지시를 따라서 스미스는 스포이드로 거즈에 구충 액체 몇 방울을 떨어뜨린 후 피부에 1시간 동안 붙였다. 피부가 따끔거리기 시작하면 알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애벌레들은 혈류를 따라 흘러들어가 폐로 향한다. 폐에 도달한 애벌레들은 기관지를 기어올라가서 식도에 도달하는데, 스미스가 무의식중에 그것들을 삼키면 내장으로 빨려 내려간다. 이 전 과정이 이뤄지는 데 2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일단 애벌레가 자리를 잡고 나자 증상들이 완화되었고 음식 알레르기도 사라졌다. 벌레가 모두 죽어버리고 난 후 스미스는 다시금 감염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로런스는 이미 북아메리카를 떠난 상태였다. FDA 문제로 미국 내에서 애벌레 수입도 금지되었다. 그나마 외국에서 스스로를 감염시킨 후에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불법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스미스는 로런스의 이전 사업 파트너인 가린 아글리에티를 만났다. 그는 멕시코 의사와 손잡고 편충 애벌레를 길러 판매하는 가게를 차린 상태였다. 스미스는 미국 법률을 문자 그대로 준수하느라 고생했다. 불법이라 하더라도 스미스는 해외로 여행을 다녀올 만한 상황이 안 되는 사람들의 불법 수입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투입 샘플 크기는 손가락 손톱 크기만합니다. 봉투에 넣어서 이메일로 보내면 알 수가 없죠.”
벌레 전쟁
지난해 8개의 낭충을 삼키기 전, 톰은 삼키게 될 애벌레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애벌레가 귀여운 쪽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작은 꼬리를 가진 복슬복슬한 축구공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그것보다 더 끔찍한 모습이더라도 삼켰을 겁니다.” 두 달 후 증상은 나아지지도 악화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2~3달이 지난 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다가 기르던 개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굴을 털에 비비더라도 더 이상 눈이 따갑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침이 나지 않았거든요. 알레르기 반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먹을 수 없었던 것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나서 그는 처음으로 스시를 먹었고, 콩 소스에 날 해산물을 찍어 먹었다. 그동안 먹을 수 없던 음식 두 가지를 한꺼번에 먹은 셈이다. “땅콩도 시도해볼까 했습니다만 두려움이 너무 커서 먹지 못했습니다.” 톰과 스미스의 성공 사례에도 불구하고 기생충 치료법에는 깊은 회의를 표명하는 이들이 다수 있다. 톰과 스미스처럼 특히 절망적인 상황의 환자가 자가 감염에 의존할 경우에 더 그러하다. 캘거리 대학교 생리학&약물학 교수이자 스나이더 인스티튜트 위장 연구소 의장인 데렉 맥케이Derek Mckay 박사의 말이다. “기생충이 기생충이라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생충은 숙주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아갑니다. 우리의 연구조사를 읽은 환자들이나 가족들은 우리에게 전화를 해서 기생충을 얻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기생충 요법은 주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몇몇 기생충은 인간 숙주에게 이익을 주는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감안한다 해도 의학계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고, 자가 감염을 정당화하기에는 해결하지 못한 의문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맥케이 박사는 기생충의 직접적인 활용보다 기생충이 생성하는 물질에서 신종 약물을 개발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생충이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대생물 작용 분자’를 생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논문들도 여럿 나왔습니다.” 체외 시험관 실험에서도 기생충은 충분히 면역체계 활성화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주는 특정 분자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론 유전자학이 지금보다 발전하게 되면 기생충이 새로운 약물 개발을 위한 청사진을 제공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미래 어느 날에는 환자들을 감염시키는 대신 그런 약들을 처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맥케이 박사 같은 의견이 다수 있음에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기생충에서 분리한 물질로 하는 치료가 직접 감염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본다. 런던 대학교의 미생물학자인 그레이엄 룩Graham Rook의 말이다. “면역체계가 정상 메커니즘을 벗어나 광폭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면 기생충이 만들어낸 일부 물질이 아니라 전체 패턴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즉 면역체계가 무장해제를 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하는데, 과연 그런 완벽한 환경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더 복잡한 문제도 있다.
기생충이 면역체계와 상호 활동할 뿐만 아니라 내장 속 미생물들과도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2010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의 보고에 따르면 몇몇 편충들이 알을 까기 위해서는 특정한 내장 박테리아가 필요하다고 한다. 항생제가 이 박테리아를 죽여버리면 기생충을 통한 감염 통제 역시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듀크 대학교의 면역학자인 파커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다리가 3개인 의자’로 비유한다. 하나는 면역체계이고, 하나는 박테리아이고, 하나는 기생충이다. “하나라도 없으면 의자가 서 있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면역체계가 균형이 흐트러진 상황이라면 다리 3개 중 1개를 타깃으로 치료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정상으로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의학은 수백만 년 동안 자연 선택을 통해 축적된 신체의 지혜보다 우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체내에 기생충을 투입하는 것이 기생충을 이용해 만든 약물보다 효과가 좋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기생충을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기생충학자인 로크는 TSO가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오바메드 사의 생산 기술이 이미 안정화된 TSO는 연속적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생충이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FDA의 규정 상의 장벽은 매사추세츠 벌링턴 소재 바이오기술 회사인 ‘코로나도 바이오사이언스Coronado Biosciences’ 사가 오바메드 사로부터 라이선싱 계약을 얻었고, 1회 투입 분량에 2,500개 TSO 알이 포함된 ‘CNDO-201’을 FDA에 임상 시험 신청Investigational New Drug한 이후 2011년부터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TSO가 완벽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돼지 기생충인 TSO는 인간 체내에서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해 2주밖에 살지 못한다. 그와 달리 면역체계 질병은 만성적, 장기적 문제이다.
TSO에 호전을 보이는 몇몇 환자들은 매 2주마다 재투여를 받아야 한다. 약을 계속 팔 수 있으니 TSO 판매자들로서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환자들과 보험 회사들은 매 2주마다 지출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에 비해 인간 기생충은 몸에 정착하면 굉장히 오랜 기간을 산다. 파커 박사는 이 때문에 인간 기생충이 돼지 기생충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1년에 26회 약을 투여하는 대신 5년에 1번만 투여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랜 상호진화 과정 덕분에 인간 기생충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당연히 TSO나 그 외 인간이 아닌 동물을 선호하는 기생충들은 부차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파커는 기생충 요법은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유산균만큼이나 값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의약품만큼 비싸지 않고 말이다. 오랜 생존능력, 적응능력, 상대적 저가라는 이유 때문에, 임상학자들이 듀크 대학교에서 파커 박사와 그의 동료들이 시도한 또 다른 접근법을 매력적으로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파커 박사는 최근 감염성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미래 질병 예방에도 기생충 요법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방적 목적으로 기생충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모태의 면역체계와 자녀의 면역체계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어쩌면 미래에는 아내가 임신을 하기 전에 면역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기생충으로 치료를 하고, 그럼으로써 자녀에게 발생할 수 있는 면역 질병의 위험을 낮출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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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목숨을 살려줄 친구인가?
스미스가 멕시코에서 삼킨 37개의 구충은 성숙해서 작년 2월 그의 몸 안에 안착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크론씨 증상 때문에 더 이상 고생을 하지 않는다. 또한 항염증 약물인 ‘휴미라Humira’도 더 이상 복용하지 않는다. 그는 이 약물이 “스위스제 시계를 망치로 내려치는 것만큼 신체에 타격이 크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루에 30알씩 먹던 약들을 모두 끊었다. 체중은 48kg에서 68kg으로 늘어났고, 끔찍한 면역 반응으로 인한 고통을 염려하지 않고서도 고섬유질이 함유된 채소 등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제 완전히 정상적 삶을 회복했다고 자신한다. 스미스는 크론씨병에 TSO 사용이 허가된다면 몸 안에 있는 이식한 기생충 대신 TSO 처방으로 바꿀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FDA가 약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기생충 요법 시 판매처의 말에만 의존하거나, 알아서 자가 처방하는 데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미스와 달리 톰은 FDA가 승인한다 하더라도 TSO로 갈아탈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지금 몸 안에 넣어 둔 이 기생충을 마치 수호천사처럼 생각하고 있다. 톰은 이 기생충들이 실제로 몸에서 무언가 빼앗아가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삼키고 난 이후에는 최소 1년 정도는 추가적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말한다. 그의 오랜 친구들, 즉 기생충들은 그가 이전에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해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건강 문제는 잊어버리고 삶에 집중하게 해준 것이다. 지난 어느 여름 밤, 톰은 과자 봉투를 면밀히 살피지도 않고서 포테이토칩 반 봉지를 먹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포테이토칩은 땅콩 오일에 튀긴 것이었다. 아마 기생충 감염을 하기 전이었다면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었다. 그는 남은 반 봉지도 모두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