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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권의 만화책 소장가 김형규

기사입력 2014.03.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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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권의 만화책 소장가 김형규

집에 만화책이 만권 있는 마흔 살 아저씨. 바닥부터 천장까지 만화책이 쌓여있다. 이러면 덕후(오타쿠를 한국어로 순화해 표현하는 용어) 같다. 

서울대 치의예과를 나온 남자. 한국 VJ 1호. 꽃 마냥 예쁜 연예인과 함께 사는 남자. 이러면 느낌이 다르다. 

김형규. 이제는 연예계를 떠나 치과의사로 살고 있으며, 자우림 김윤아의 남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남자, 만화계에선 알아주는 덕후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모은 만화책이 병원에 500여권, 집에 7000여권, 부모님 집에 2000여권 정도 쌓여있다. 만화로 맺은 인연으로 현재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성공한 덕후는 덕후가 아니라고들 한다. 그럴 리가. 덕후는 덕후다. 덕후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를 뿐이다. 김형규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김형규는 "만화가 인생의 스승"이라고 했다. 살면서 많은 것을, 많은 인연을 만화를 통해 맺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형규는 처음 만화책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마치 아버지에게 술을 배우듯, 김형규는 그렇게 만화책을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길창덕 화백의 '선달이 여행기'를 처음 접했다. 아버지도 치과의사였다. 

새로운 세계였다. 클로버 문고에서 출간했던 '요철 발명왕' '꺼벙이' '악동이' '로봇 찌빠' 등은 어린 김형규에게 모험심과 용기, 꿈을 키워줬다. 물론 만화는 재밌었다. 고유성의 '로보트킹' '번개특공대', 김형배의 '이십세기 기사단' 등은 김형규의 꿈을 우주로, 다른 세계로 넓혀줬다. 김형규는 "돌이켜보면 그 때 본 SF만화나 발명 관련한 만화들이 이과적인 생각을 갖도록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던 시절, 그러니깐 90년대 초중반 전국 문방구를 일본 불법 복제만화들이 휩쓸었었다. 일본 만화 가이드를 주로 출간했던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를 비롯해 '드래곤볼' '북두신권' 등이 어린 학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김형규라고 다를 바 없었다.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만화책을 사고 집에 모셔 놨다. 말 그대로 모셔 놨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만화의 적은 엄마다. 그 때는 더 심했다. 어린이날이면 만화책 화형식이 열리곤 했다. 김형규가 모셔 놓은 만화책들은 어느 순간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김형규는 "어머니에게 성적을 떨어뜨리지 않을 테니 만화책을 보는 걸 막지 말아달라고 했었다"고 했다. 만화를 보기 위해 공부를 했다는 말이다. 김형규는 "목적의식이 생긴 셈"이라고 했다. 만화가 그에게 목적이었다는 뜻이다. 마침 미국 드라마 '하버드대의 공부벌레'가 큰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김형규는 "50분 공부하고 10분 만화 보는 습관을 들였다"고 말했다. 만화를 빨리 보면서 속독하고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도 생겼다고 했다. 김형규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도서대여점에서 빌려 본 만화책을 나중에 확인해보니 1만 2000여권이었다고 했다. 그에게 만화는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온 친구이자, 동료이자, 스승이자, 추억이었다. 

강경옥의 '별빛 속에',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딸들' '리니지', 순정만화는 여자들이 보는 것이라고 했던 시절. 오히려 김형규는 그 속에서 다른 삶을 배웠다. 운명에 도전하는 강한 여자들. 그런 여자와 만나 결혼까지 했으니 만화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김형규는 스스로 '범생이'였다고 했다. 서울대 치의예과를 갈 정도 성적을 내려면 공부에 파묻혀 살아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을 터. 그런 '범생이' 김형규는 만화를 보면서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도 같이 키웠다. 중학교 때 '타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허영만의 '48 1'을 읽고, 어른들의 세계를 엿본 듯한 흥분을 얻기도 했다. 

더 많은 만화를 보고 싶고, 알고 싶어서 '범생이' 김형규는 중국대사관 언저리를 뒤지며 일본 만화전문지 뉴타입을 사 모으기도 했다. 뉴타입 한국 라이센스판이 나오기 전이었다. '응답하라 1994' 세대들 중 만화에 눈 밝은 사람들은 다 겪었겠지만 애니메이션 '아키라'를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전설의 음란 애니메이션 '우루츠키 동자'를 보고 정서적인 충격을 받았다. 범생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모험이었다.

대학 입학도 만화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 의사에 대한 막연한 꿈을 키우던 시절, 그래서 의사만화에 손이 더 많이 갔다. 데즈카 오사무의 전설의 만화 '블랙잭'을 비롯해 '슈퍼닥터K' '의룡' 등 의사만화를 읽고 또 읽었다. 

1994년 입시 때는 처음으로 수학능력시험이 생겼고, 본고사가 부활했었다. 서울대 본고사 문제 중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가 나왔다. 환자의 증세를 설명하고, 치료법을 적으라는 문제였다. 김형규는 문제를 본 순간 전율했다. '슈퍼닥터K'에 나온 사례였다. 나중에 면접 때 교수님이 "이 문제는 틀리라고 낸 문제인데 자네 스승이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김형규는 씩씩하게 "슈퍼닥터K입니다"라고 했다. 교수님은 "훌륭한 스승을 뒀군"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에게 만화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이지만 대학 생활은 덧없었다. 누군가에겐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김형규는 절실했다. 

김형규는 "범생이라 더 변하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변신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대학생이 됐다고 변신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학교 생활이란 게 '오렌지로드'나 아다치 미츠루 만화처럼 말랑말랑하고 두근두근할 리도 없었다. 

김형규는 고민했다. 순둥이가 최고의 권투선수가 되는 이야기인 '더 파이팅'처럼 변하고 싶었다. '슬램덩크'처럼 기초부터 읽어 다른 재미를 찾고 싶었다. 마침 한국에서 처음으로 VJ를 공개 선발했다. 김형규는 "VJ 선발 공고를 보고 만화처럼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전은 만화처럼 이뤄졌다. 

김형규는 VJ 활동을 하면서도 만화와 인연을 놓지 않았다. EBS 라디오카툰을 진행하며 만화를 소개했다. 한국판 뉴타입에 '무슨 말하고 있어'라는 이름으로 만화 칼럼을 썼다. 만화의 인연은 지금의 부인 김윤아와 만남으로 이어졌다. 

김윤아가 김형규 바로 전에 뉴타입에 만화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던 것. 김윤아 역시 소문난 만화광이었다. 우연히 김윤아를 만난 김형규는 자연스럽게 만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자신이 소장한 희귀 만화책들을 빌려줬다. 빌려줘야 했다. 그냥 주면 다시 만날 수 없으니. 김윤아는 자신이 갖고 있는 만화책들을 다시 김형규에게 빌려줬다. 그렇게 만화처럼 만화로 맺어진 인연이 시작됐다.

김형규는 김윤아와 홍대 서점에서 만화책을 산 뒤 커피숍에서 그 만화책을 읽는 만화책 데이트를 즐겼다. 그 인연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김형규는 지금도 만화와 인연을 소중히 한다. 희귀 만화책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지기도 한다. 그렇게 찾은 만화책은 옛 친구와 재회한 것 같은 기쁨을 준다. 만화로 맺은 인연으로 허영만, 이현세, 길창덕 등등 하늘의 별 같았던 만화가들과 만나기도 했다. 김형규는 "선생님들을 만날 때 어린 시절 추억과 만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만화는 이제 그에게 삶의 일부가 됐다. 아니 만화를 처음 접할 때부터 그에게 만화는 삶의 일부였다.

일본에서 만화의 신이라고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의 또 다른 직업은 의사였다. '아톰대사' '블랙잭' '불새' 등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 낸 데즈카 오사무는 김형규에게 또 다른 스승이자 영웅이었다. 여러 세계를 창조하고, 연결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손끝으로 풀어낸 데즈카 오사무. 김형규는 만화를 그려낼 능력이 없다는 게 못내 아쉽고, 그래서 만화가들을 존경한다. 그의 만화 수집은 존경의 또 다른 표현이다. 

김형규는 "왜 멋진 걸 보면 영화 같다고 하고, 허무맹랑한 것을 보면 만화 같다고 할까요?"라며 "만화는 제9의 예술이라고 하잖나. 그런 예술을 우리나라에선 너무 푸대접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초등학교에 올해 입학한 아들을 둔 김형규. 그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아이에게도 만화를 입문시켰다. 못 말리는 공룡 이야기인 '곤'을 첫 만화책으로 소개했다. 지금은 '도라에몽'에 푹 빠져 있단다. 자기도 자신의 부모처럼 아들과 만화책 숨바꼭질도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숨겨놓으면 아들은 찾아내는. 김형규에게 만화는 그렇게 삶의 소중한 영역이 됐다.

김형규에게 인생의 만화가 뭐냐고 물었다. 고민하던 그는 며칠 뒤 문자를 보내왔다.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 천재의사의 이야기다. 그의 영웅과 그의 삶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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