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중년들이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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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들이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기사입력 2012.11.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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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들이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중년을 넘어서면 인생은 '꺾은선그래프'를 그린다.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면 지위와 소득 모두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하는 까닭이다. 여기까지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 중년에게는 외국 중년에게는 없는 큰 '혹'이 하나 더 있다. 힘 떨어진 부모가 뭉칫돈을 뚝 떼어내 자식 결혼 비용 대느라 무리하게 된다. 이것이 특히 수명이 마냥 길어지고 있는 이 시대 부모 세대의 노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고령화 시대 고(高)비용 결혼 문화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저는 올해 55세 주부입니다. 고향은 강원도예요. 회사원 남편(56)과 2만5000원짜리 사글세 단칸방에서 출발해 2남 1녀 기르며 결혼 16년 만에 융자 1억원 끼고 4억4000만원짜리 아파트(109㎡·33평)를 마련했어요. 제 돈 내고 해본 최고 사치가 12만원 주고 가죽 핸드백 산 일이에요. 한평생 '나는 이 나라에서 딱 중간이다' 생각했어요. 사회에 불만을 가진 적도 없고, 누구한테 항의하거나 어디 가서 시위한 적도 없어요.

그런 제가 요즘 잠이 안 와요. 원래 밤 9시면 자리에 들고, 등 대면 잠드는 무던한 성격이었어요. 그런데도 요즘은 선잠만 자다가 새벽 1시쯤 어김없이 깹니다. 일하러 나가는 남편까지 잠을 설칠까 봐 아예 마루에 누워요. 남편은 작년에 구조조정당한 뒤 경비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사는 곳은 결혼 16년 만에 마련한 아파트가 아니라 낡은 다세대주택(83㎡·25평)이에요. 올 초 대학원 다니던 장남(31)을 결혼시킨 뒤, 이사 온 집이지요. 그 집 캄캄한 마루에 저 혼자 누워 소리를 낮춰서 TV를 틀어놓고 아침까지 잠을 못 자요.

장남이 며느릿감을 데려온 게 작년 가을이에요. 신혼집 구하는 게 큰일이었어요. 서울엔 2억원 안쪽 아파트가 없었어요. 부동산에 갔더니 "집 구하러 왔다가 대판 싸우고 결혼 깨지는 사람을 수없이 봤다"고 해요.

급한 대로 형제들한테 빚을 얻어서 수도권에 1억6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를 얻어줬어요.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서 신혼부부가 들어갈 소형 전세금만 오르고, 우리 부부가 내놓은 아파트는 거래가 아예 끊어졌어요. 앉은 자리에서 호가만 뚝뚝 떨어졌지요.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4억4000만원 하던 아파트가 지금은 3억6000만원이에요.

그래도 팔리지 않아 할 수 없이 저희 아파트를 2억5000만원에 전세 줬어요. 그 돈으로 아들 신혼집 얻어주느라 진 빚을 갚았어요. 이번엔 우리 식구가 들어갈 집을 구할 차례였어요. 우리 부부와 아직 결혼 안 한 딸(29)과 대학생 막내아들까지 네 식구가 살아야 하는데, 좁은 집도 전세금이 1억2000만원이나 했어요. 제가 전세 대출을 4000만원 받고, 카드론도 1000만원 받았어요. 아파트 살 때 얻은 융자 1억원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태고요.

아들 결혼시킬 때, 신혼집 전세금 말고도 결혼 비용으로 2500만~3000만원이 더 들어갔어요.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라서 명품 가방도, 패물도 남들만큼 사줬어요. 결혼 준비하면서 아들한테 우리 부부 사정을 다 얘기한 적이 있어요. 마침 남편이 회사에서 구조조정당하던 시기였어요. 아들은 묵묵히 듣기만 했어요.

정말 힘든 건 결혼시킨 뒤였어요. 아들은 올 초 결혼식을 올리고도 한참이나 취업을 못 하다 최근 직장을 구했어요. 그동안 며느리 월급으로 살았어요. 우리 부부가 아들 생활비는 안 댔어요. 하지만 매달 40만원씩 학자금 대출 갚고, 20만~30만원씩 휴대전화 요금 내주는 건 우리 부부 몫이었어요.

남편 경비 월급은 200만원이에요. 공과금 내고, 카드 막고, 네 식구 먹고 입고…. 남편이 앞으로 5년은 더 일하겠지요. 하지만 4대 보험도 안 되는데…. 노후 대비? 그건 지금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당장이 문제예요.

얼마 전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 "여보, 나 청소일 하려고" 했어요. 남편이 가만히 있더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한마디하고는 더 말이 없었어요. 마음이 아팠겠지요. 결혼할 때 남편은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에 동생들만 줄줄이 딸린 남자였어요. 그래도 마음씨 착하고 다정한 게 좋아서 연애결혼했어요.

제가 밤새 잠 못 드는 건 억울하기 때문이에요. 나는 우리나라에서 딱 중간인데,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내가 남들 안 하는 사치를 한 것도 아니고, 나만 아들 결혼 비용 대준 것도 아닌데…. 로또 당첨되지 않는 한 우리 동네 이웃은 다 나랑 비슷한 상황이에요. 집마다 다들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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